강과 바람이 함께 한 옛 절터 당일여행 (여주에서 충주까지)
지역: 여주-원주-충주
이동수단:자가용
기간: 당일
숙소: 없음
강은 흐른다
막아서는 물체가 나타나면 넘어서기보다는 휘~에둘러 다시금 큰 줄기를 이룬다
그래서 강을 따라가는 여행은 예쁘다
운전을 하든, 걷든, 요즘 유행하는 자전거를 타든 예쁘다
빈공간에 들어선다는 건
때론 여유가
때론 공허함이 머무를때가 많다
그래도 비우고 싶을 때 일부러 빈공간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남한강은 태백에서 발원해서 정선 영월 단양 충주 여주를 거쳐 양평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을 이룬다.
얫 사람들은 이 강을 이용해서 이동했으며 강은 중요한 교통의 수단이었다.
여주에서 충주에 이르는 남한강변에 큰 사찰이 조성되었던 이유는 이와 큰 상관이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불에 타지 않는 석조물들이 남아 우리를 환영해주는 폐사지 즉 망해버린 절터이지만
빈 공간이 주는 여운의 깊이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깊다.
전공을 떠나 우울해지거나 고민이 있거나 머리를 식힐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여행길이 되어버린 곳들을 지금 만나볼까 한다.
여주 고달사지 - 원주 흥법사지 - 원주 법천사지 - 원주 거돈사지 - 충주
예전에는 청룡사지와 충주 중앙탑까지 둘러보는 일정으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거돈사지까지만 여행을 하고
충주 팔봉쪽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끝을 맺었다.
여주 고달사지
모든게 평화로운 날이다
오랜만에 하늘은 파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더운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비어있는 절터를 바람과 하늘이 적절하게 메워주고 있었다.
고달사지에는 저 탑비와 국보와 보물로 각각 지정된 승탑이 하나씩 있다.
꼭 전공자나 관련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크기 때문에라도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 (물론 꼭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런건 아니지만) 국보와 보물이라면 다들 유심히 보긴한다.
무엇이 국보이고 무엇이 보물인지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는 걸로 하고 흥법사지와 법천사지로 넘어가 본다.
짝 잃은 승탑비가 비석도 없이 홀로 앉아 있다
노란 꽃 한송이가 나를 반겨준다.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절터에도 계절은 지나가고 있다.
흥법사지에는 덩그러니 놓여있다
굳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처음 찾아왔을 때 보다 정리가 되었다는 것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금씩 이 절터의 흔적을 많이 발견하고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흥법사 너머 멀리 원주 문막을 바라보다 법천사로 넘어간다.
법천사로 가는 길에는 섬강과 남한강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차에서도 볼 수 있는 구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일부 자전거 도로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 자전거 도로가 얼마나 허울좋은 구실로 만들어졌는지 알기에 사실 화가 좀 났다.
그래도 강의 힘은 여전하다.
강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중 하나이다.
법천사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절의 구역이나 법회, 종파 등을 상징하는 깃발을 걸었던 일종의 받침대이다.
처음 왔을때는 이 앞이 모두가 길이었는데 이제는 많은 발굴이 이뤄져서 마을 전체가 절터로 뒤덮였다
그만큼 규모가 큰 절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탑비 중에서 가장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지광국사 현묘탑비
물론 이와 짝이라고 할 수 있는 지광국사 현묘탑도 엄청 화려하다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보세요)
현재는 서울에 있는게 아쉽긴 하지만 워낙 훼손이 심해서 섣불리 이곳으로 옮기기에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흥법사지에서 법천사지로 갈때는 무작정 네비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슬쩍 지도를 보고 지방도를 따라 강을 보면서 가는게 훨씬 좋다
네비는 내 시간을 줄여줄때가 많지만 무의미한 풍경만을 선사할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법천사지에서 거돈사지로 넘어갈 때도 최대한 강을 따라가다가 틀어야 한다.
안 그러면 놓치는 강바람이 너무 많다.
거돈사지는 산을 따라 난 도로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 넓은 절터를 보면 아득한 느낌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편안함
누군가와의 알 수 없는 추억들이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 떠오르고 이내 편안해 지는 것을 보면 어쩌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게 아닐까?
거돈사지를 나와서 남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충주를 만날 수 있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또 하나의 국보 '중앙탑'을 만나보는 재미도 느껴보시면 좋겠다.
아쉽지만 난 이번 여행에서 중앙탑에는 들르지 않았다.
절터여행이라는 건 어쩌면 어려울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고 생소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남아있는 유물들이 많지도 않고 터만 덩그러니 남은 곳에서 재미를 못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절터로의 여행은 떠날 가치가 있다
덩그러니 남은 것들에 대한 사랑과 비어있는 땅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무엇보다 강을 따라가는 길이 아닌가~
덧붙이기
저녁식사는 충주 팔봉 근처에 있는 농가맛집에서 했다
강이 휘돌아나가는 풍경과 팔봉의 신비스러운 모습은 좋았지만 식사는 평균정도였다
내 마음속 두부구이의 최고는 인제 '고향집'이다.